하얀 종이에 콩나물처럼 생긴 음표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악보를 들여다보면서, 조막만한 손으로 건반을 두드리는 아이의 모습. 제 아무리 마음의 굳은 살이 잔뜩 생겨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랑스러울 수 밖에 없는 풍경이다. 양손을 가슴께에 대고, 꼭 쥔 손으로 박자를 맞춰가며 동요를 부르는 모습은 또 어떠한가. 하지만 이런 아이가 시·청각 장애인이라면? 제아무리 피아노가 좋고 노래가 좋다해도 악보를 보거나 노래를 들을 수 없으니 비장애아처럼 배우고 부르고 건반을두드리기가 어렵다. 이처럼 불빛하나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를 홀로 노 저어 가는 시·청각 장애 아동들에게 등대같은 불빛을 선사한 이가 있다. 바로 '아이노래(www.inore.co.kr)'대표인 김윤경 씨. 파이프 오르가니스트로 통신대 유아교육과에도 출강하고 있는 김 대표는 2년반 전부터 시·청각 장애어린이를 위해 점자 동요 악보와 수화 동요 동영상을 제작하여 무상으로 보급해 오고 있다. "어릴 때 소아과 의사가 되고 싶었을 만큼 아이들을 좋아 했어요. 음악가의 길로 접어들게 되면서부터 줄곧 음악으로 어린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를 생각했죠. 그러던 어느 날, 점자동요 악보와 수화동요 동영상을 만들면 장애아들이 음악을 마음껏 즐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." 기독교 신자인 김 대표는 봉사활동을 하며 장애우들과 자연스럽게 만나왔고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왔다고. 김 대표는 88년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된 독주회 때에도, 수익금 전액을 시각 장애아들을 위한 점자 프린터 구입에 쏟아 부은 바 있다. 소리 없이 조용히 시작된 사랑은 여기저기에 열매를 맺어가기 시작했다. 김 대표가 만든 악보와 동영상으로 노래와 피아노를 배운 장애아들은 김대표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 왔다. 그들에게는 개안(開眼)이나 다름없을 선물은, 세상 그 어떤 선물보다 더 값지고 귀하게 포장되어 눈과 귀가 불편한 어린이들에게 전해졌다. 선물을 받아 든 어린이들의 마음속에는 음악의 씨앗들이 뿌려졌으리라. 지난 4월 열린 제3회 전국 동요콩쿨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어린이 역시 김 대표의 점자악보를 보고 노래를 부른 시각장애아였다고. 김 대표는 '1인 1 점자 악보운동'을 추진하고 있다. 점역비를 후원하면 그 점자악보에 후원자의 이름이 평생 새겨지는 것. 보다 더 많은 동요의 음표들이 점자악보 속에서 즐겁게 춤추게 하기 위해서이다. 이러한 음악 선물이 지금보다 더 풍성해진다면 우리어린이들의 마음 밭은 더욱 더 기름져 갈 것이다.